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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의 동맥,금남로 금융,상업의 중심지
 
 
  전남도청을 기점으로 금남로1가부터 5가까지 수십여 곳의 금융기관들이 늘어서 있다. 광주경제의 중심지로서 활력이 넘치고 많은 직장인들의 발길이 분주하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까닭에 상가와 식당 등이 밀집해 있다. 행정구역상 동구에 해당되는 광주의 도심에는 행정, 금융, 상업시설들이 모여있다. 충장로, 금남로를 중심으로 금융의 거리, 혁명의 거리, 청춘의 거리, 패션의 거리가 이어진다. 이들 번화가의 낮은 분주하고 밤은 화려하다. 외곽으로 살짝 벗어나면 공원과 유적이 있어 도심속 여유를 맛볼 수 있다.
   
   
 
 깨어있는 저항정신
 
 
  전남도청 앞부터 시작하여 넓게 뻗어있는 금남로는 광주의 상징이다. 피로써 민주주의를 지켜낸 5·18광주민중항쟁의 현장이다. 1980년 5월 당시 전남도청은 항쟁의 본부였고 앞에 있는 분수대를 연단으로 각종 집회를 열었으며 항쟁의지를 불태웠었다. 이곳은 '96년부터 5·18민주광장으로 불려지고 있다. 도청 앞에 위치한 상무관은 당시 계엄군의 집단발포로 희생된 시신을 임시 안치했던 곳이다.
   
   
 
 여기서 잠깐 - 재명석등
 
 
  도청 앞뜰에 서 있는 재명석등(在銘石燈)은 고려초 작품으로 추정되는 석등. 원래 광주 남문 안에 있던 대황사 유물로 전해지고 있다. 언제 옮겼는지 알 수 없으나 도청 앞 무덕사 앞마당에 있다가 건물개축으로 1968년 현 위치로 옮겨졌다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회관
 
 
 

광주학생독립운동은 3·1운동과 더불어 일제 식민치하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민족운동으로 광주~나주 통학열차에서의 여학생 희롱과 집단충돌사건이 그 도화선으로 기록되고 있다. 광주에서 타오른 항거의 불길은 전국으로 확산돼 모두 194개 학교에서 학생 5만4천여명이 참가하면서 3?1운동 이후 최대의 민족운동으로 발전했고 이후 항일 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된다.

   
   
 
 민족정신의 횃불 광주학생독립운동
 
 
 

광주학생독립운동 주역들의 민족정신을 기리기 위해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 건립 추진회가 1967년 11월 3일 건립했다. 당시 가슴에 품고 민족혼을 고취했던 태극기, 그 정신은 후학들에게 큰 교훈으로 남아있다. 광주학생기념역사관에는 매년 수 만명의 관람객들이 찾아와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정신을 기리고 역사의 참뜻을 배운다.

   
   
 
 기념역사관 제1, 2전시실
 
 
 

광주학생독립운동 주역들의 민족정신을 기리기 위해 지난 1997년 기념공원과 함께 건립됐다. 제 1전시실 광주학생독립운동과 관련된 당시 일제의 공판 기록이나 신문기사, 각종 사료 등을 전시하고 있다. 제 2전시실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진원지로 그 맥을 잇고 있는 광주제일고등학교의 역사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광주고보생들의 항일정신은 제 2차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이끈 광주서공립중학교와 광주제일고로 면면히 계승되고 있다.

   
   
 
 여기서 잠깐 - 광주학생운동기념탑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옛 광주고보(現 광주일고) 교정에는 1954년에 세운 높이 약 11m의 웅장한 광주학생 독립운동기념탑과 기념공원이 조성돼 있다. 또 매년 11월 3일을 학생의 날로 정해 '이름없는 별들'의 숭고한 애국투쟁 정신을 기리고 있다.

   
   
 
 도심 속 여유 광주향교
 
 
 

구동 광주공원과 사동 사이에 위치한 광주향교는 건축물의 초창 시기는 분명치 않으나 조선 태조 1년(1392) 국가적 정책차원에서 대부분 향교가 건립되던 무렵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측한다. 광주향교는 건축물로서 가치보다는 문묘제향(文廟祭享)의 표본적 향교로서 의미가 있다. 제향은 매년 봄, 가을 두 차례 치뤄지며 일반 시민들의 전통혼례식도 종종 열린다.

   
   
 
 우일선 선교사 사택
 
 
 

우일선 선교사사택은 양림산 기슭에 동향으로 세워진 2층의 회색 벽돌건물로 미국인 선교사 우일선에 의해 1920년대에 지어졌다고 전해올 뿐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건물의 평면은 정사각형으로 1층은 거실, 가족실, 다용도실, 부엌, 욕실이 있고, 2층은 사생활 공간으로 침실을 두었다. 지하층은 창고와 보일러실이 있다. 이 건물은 광주에 남아 있는 양식(洋式)주택으로는 가장 오래된 건물로 현재 기념물 제5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장우 가옥
 
 
 

양림동에 위치한 이장우 가옥은 동서를 축으로 대문칸, 곳간채, 행랑채, 사랑채, 안채로 배치된 상류양식의 기와집이다. 안채의 상량문에 ??광무 3년 을해 2월 11일??로 기록되어 있어서 1899년에 건축된 것임을 알 수 있다. 1989년 3월20일 지방민속자료 제1호로 지정된 안채는 정면 6칸, 측면 1칸의 ㄱ자형 팔작집이다.

   
   
 
 사직공원
 
 
 

남구 사동 및 양림동 일대에 걸쳐 있는 사직공원은 광주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시민들의 휴식공간. 광주공원과 잇닿아 있으며 규모는 92.5여k㎡에 달한다. 조용하고 오랜 역사만큼이나 장대한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어 명상이나 산책길로 그만이다. 예전 동물원이 있던 자리에는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사직단이 복원되어 있고 팔각정에 오르면 시내전경이 한눈에 보인다.

   
   
 
 최승효 가옥
 
 
 

양림산 동남쪽 끝부분에 있는 이 집은 원래 독립운동가 최상현(崔相鉉)의 집이다. 정면 8칸 측면 4칸의 매우 큰 규모의 전통가옥으로 일자형 평면의 팔작집이다. 이 건물의 대청을 제외하고는 다락을 두었는데 이곳에 독립운동가들을 피신 시켰다고 한다. 1920년대의 가옥으로 한말 전통가옥의 이행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건축사적 의미가 크다.

   
   
 
 정율성 생가
 
 
 

20세기의 위대한 작곡가 정율성(1914~1976)선생이 태어난 생가로써, 선생은 이곳에서 숭일소학교를 다녔다.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중국의 진보적 항일운동의 중심지였던 연안으로 옮겨 노신예술학교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성악교육을 담임하였으며, 조선의용대 무정 장군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깊은 동지애를 나누었다. 중국의 아리랑으로 회자되는《延安訟》중국인민해방군의 군가로 지정된 《팔로군행진국》등은 모두 이 시기에 창작된 것이다. 일생동안 교향곡을 포함 360여곡의 주옥같은 노래를 작곡하여 현대 중국음악사상 최고의 음악가로 평가되는 정율성 선생은 20세기 광주가 낳은 걸출한 항일운동가이자, 동아시아의 음악을 발전시킨 혁명음악가이며, 세계평화와 우의를 실천한 훌륭한 민간외교가이다.